환상의 빛 Indistinct Vision

이병호 ByungHo Lee

October 16 - November 29, 2025

진행형의 조각


구나연, 미술비평가


기원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조각품은 약 28만년에서 23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골란 고원의 베레카트 람의 비너스(Venus of Berekhat Ram)와 약 4만 1천년 전으로 추정되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에서 출토된 홀르 펠스 비너스(Venus of Hohle Fels)이다. 한편 가장 오래된 회화는 약 7만 3천년 전의 블롬보스 동굴 벽화(Blombos Cave Drawings)이고, 형상이 있는 것으로는 약 4만 5천년 전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르앙 카람푸앙 동굴에서 발견된 사마귀 멧돼지 벽화(Sulawesi warty pig cave painting)이다. 조각의 경우는 ‘비너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두 인체의 형태이고, 회화의 경우, 블롬보스 동굴은 사선의 교차 줄 무늬, 사마귀 멧돼지 벽화는 이름 그대로 동물의 형상을 그린 벽화이다. 다시 말해 조각은 그것을 만들었을 사람의 모양에서 비롯되었고, 회화의 주제는 추상적 패턴 혹은 사냥의 대상이다. 조각과 회화, 모두 예술의 의식 가치를 기원으로 하지만 그 표현의 대상은 사뭇 다르다. 입체의 조각은 인체라는 익숙한 주체의 가치를 지향했다면, 회화는 무늬와 동물과 같은 객체의 가치를 지향했다. 하여 조각이라는 장르에 있어 ‘인체’는 그 탄생과 존재의 기원을 함축하면서, 조각과 인체의 관계는 미술의 역사에서 20세기로 들어설 때까지 ‘집요히 밀착된 상태’로 지속되었다.


이병호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인류 최초의 조각까지 거슬러간 이유는, 인체와 조각이 역사적으로 구축해온 이 ‘집요히 밀착된 상태’가 그의 작업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이 지닌 궤적은 조각의 역사 안에서 새로운 인식, 즉 인체와 조각의 관계를 거듭 실험하여 이를 조각 자체로 확장해가는 과정이다. 그는 인체를 재현하는 의무로부터 ‘조각’ 자체를 추출한다. 조각의 개념을 인체라는 근원적 형태로부터 가져오되, 인체의 재현이 지닌 지시성으로부터 조각을 분리하는 것이다. ‘인물’이 아니라, ‘인체의 조각’을 문제 삼는 일은 그것이 겨냥해온 대상의 지시성으로부터 탈주하면서, 조각이라는 장르에 대한 근원적 심연을 탐구하는 일이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형상을 불가결의 조건으로 하는 자기 충족 상태를 벗어나 있다. 그 대신 개념의 범주를 넓히며 발견해가는 입체의 형태는 현재 진행형의 조각적 경로로 귀결된다.



증식과 환시

이병호에게 인체는 조각의 역사적 기원이자 정체성의 단일 명제로 작용하여, 우선 인체의 재현이라는 요소를 ‘복제’의 측면으로 뒤튼다. 그는 실제 인물을 캐스팅한 뒤, 그것을 하나의 모본으로 분리하고 해체하여 전혀 다른 형태로 나아간다. 모본은 미술사 속 그 어떤 인체의 조각상으로도 변형될 수 있는데, 역사적 조각상과 유사하게 모본 형상의 해부학적 논리를 가르거나 비트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모본의 변주 상태에서 드러나는 그 균열과 틈새에는 여러 재료들로 메워지고, 때로는 인체조차 흡사 동세를 지닌 지지대 역할로 변화된다. 예컨대 그의 2019년 작 <Anthropometry>는 아홉 개의 각기 다른 인체 형태가 역동적으로 공간을 점유한다. 이러한 점유는 특정 서사나 내용을 담기 위한 장면이기보다, 모본의 형태적 증식을 통해 제시된 인체 조각의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체계로 보인다.


특히 2020년 스페이스 소에서 진행된 개인전 《Three Shades》에서, 그는 로댕의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아담(Adam)과 세 망령(Three Shades)의 선례를 기반으로 인체 조각의 증식과 변주의 성격을 명료히 제시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포스트모던적 반복으로 논의한 바와 같이, 로댕이 <지옥의 문>에 사용한 주조 방식의 연속성(seriality)은 모더니즘적 독창성(originality)의 이념을 흔들고, 조형적 배치에 의한 재맥락화의 가능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1] 이병호는 소조의 과정에 내재한 복제와 반복의 속성을 독해하여, 이를 인체 자체의 ‘복제’로 한층 더 소급해 들어간 후에 동일한 인체 원형을 재맥락화, 재구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로댕의 재맥락화는 조각이 360도의 3차원 입체인 것과도 관련되는데, 입체를 보는 우리 시선의 스펙트럼은 180도 미만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 즉 조각의 존재 방식과 인간 육체의 인지적 한계 사이의 간극은 똑같은 ‘아담’이 반복되더라도 그 위치에 따라 다른 형태로 인식된다는 것을 적극 활용한 결과다. 더욱이 실체의 입체성과 인간의 인식 사이에 발생하는 2원론은 이병호의 작업에서 조각성의 개념의 문제로 한층 심화된다. 그는 인체 모본의 형태적 변형과 변주를 무수한 차이로 가속시키기 위해 로댕의 아바티(abattis) 방식을 차용한다.[2] 하나의 신체 원형의 부분 부분을 수없이 분절한 편린으로 해체하고, 이때 발생하는 여러 아바티들의 아상블라주는 해체와 결합, 변화와 증식을 이어가며 불가해한 양상으로 재구축된다. 이 과정이 가속화될수록 조각은 신체에서 멀어지며 추상적 형태로 진화한다. 조각과 인체의 ‘집요한 밀착 상태’라는 기원을 보유한 채 이로부터 끝없이 멀어지는 모순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결과, 조각은 인체로부터 분화되고, 인체는 형태로 치환된다.


또한 이 과정은 이병호가 자신의 작업에서 단계를 밟아 진행하는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다. 인체를 그대로 캐스팅한 원형에서 시작해 완전한 추상으로 이행하는 각 단계는 치밀한 의지를 통해 종결 없는 조각적 상태를 추론한 결과들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에서 조각이 이미지의 문제와 결합되면서 색의 어휘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앞서 로댕의 반복과 같이, 우리의 인식에서 입체는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언제나 이미지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조각의 이미지는 물질적 양감과 형태의 외곽이 이루는 변화무쌍한 실루엣을 지닌 채 현시한다. 덩어리 표면의 색은 물성 자체가 지닌 채도와 조도의 음영과 2중으로 결합하고, 여기에 우리가 인간인 이상 조각의 전체를 단번에 지각할 수 없다는 시선과 움직임의 불가결하고 현상학적 한계도 덧붙여진다. 만일 그것이 붉은 색의 표면을 갖고 있다면 조각의 이미지에서 붉은 색은 세 겹의 왜곡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병호는 이를 “실재의 질량과 이미지적 질량”의 공존으로 설명하는데, 조각 표면의 색은 이러한 필연적 왜곡의 전투가 생성되는 장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환상의 빛》은 이러한 조각의 특성과 그 이미지성으로 채워진다. 인체 원형을 조건으로 하는 변주를 통해 추상에 이른 조각, 그리고 그 위에 색이 개입하면서 조각의 개념은 그 범주를 넓힌다. 예컨대 <Eyes and Vision>은 신체의 아바티들을 통해 불가해하게 구축된 독립 입상이다. 표면에는 엄밀하게 구분된 색채의 논리가 드러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끝없이 어긋나게 구획된 채색과 입체적 굴곡이 뒤섞여 있다. 혼란스러운 비논리적 구성은 질감과 명암으로 절대적인 색채를 가늠할 수 없이 고조되며, 이는 조각적 실재와 이미지의 색채가 만들어내는 충돌의 국면이 된다. 그 충돌은 우리의 눈, 위치, 거리에 따라 다르게 감지되며, 착시와 착각, 입체와 표면이 어지럽게 결부된 “환상의 빛”을 만든다. 충돌과 환상의 역설은 <Image Thing>과 같은 고부조의 작업에서도 야기된다. 채도가 높은 뚜렷한 색채의 대비는 동일한 색채 안에서도 명확한 음영과 그로 인한 농도의 차이를 만들면서 형태와 색채가 끝없이 엇물리며 조각의 이미지 혹은 이미지의 환상을 보여준다. 이야말로 조각이라는 입체가 지닐 수밖에 없는 복잡한 양태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각이 지닌 결여와 3차원 사이에 형성된 본질적인 불완전성이 드러난다. 이는 인체라는 입체를 형상이라는 입체로 매개하며 완고한 실재성을 대리해온 조각의 숙명을 치밀한 숙고로 침범해갈 때 드러나는 환시이다.



확장과 발생

이병호는 인체 캐스팅을 분절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아바티 오브제를 생성한다. 이때 아바티의 원형은 3D 스캔을 통해 시뮬레이션한 데이터로 보존된다. 각각의 아바티 원본은 분해와 재조합의 과정에서 소실될 수밖에 없지만, 구상성을 지닌 원형을 데이터화하여 이것을 때에 따라 디지털 조립으로 덩어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 이때 컴퓨터 데이터상의 오브제는 원래 지녔던 물성과 두께, 안과 밖이 휘발된 채, 좌표의 지점에 따라 존재하는 ‘정보’가 되고, 좌표가 움직일 때마다 그 형태와 음영, 위치와 방향이 가시화된다. 데이터상에서의 이미지는 우리가 경험하는 2~3차원이 아닌, 좌표 차원의 공간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입체는 X, Y, Z축을 통한 수학적 상태를 절대 조건으로 갖는다. 조각의 입체는 좌표의 집합과 하나 이상의 빛으로 설정된 추상 공간에서 면과 실루엣, 명암과 그림자로 나타난다. 이때 우리도 평면의 모니터에서 어떤 입체 이미지를 보게 된다.


<Silhouette Coordinates>는 좌표의 높낮이에 따라 설정된 위치의 값이 형성한 윤곽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 값으로 잠재된 아바티들의 형태가 결합하여 구축된 이미지이다. 이것은 우리 앞에 평면의 이미지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좌표에 의한 입체의 차원으로 존재한다. 즉 오늘의 매체 환경에서 입체의 차원은 우리의 경험적 현실과는 전혀 다른 ‘입체’의 개념을 만들어내면서, ‘또 다른 조각’의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각, 그리고 인체 조각이라는 이병호의 문제 의식을 전개할 수 있는 개념적 토양으로 작용한다. 특히 조각의 입체와 우리 눈의 시각적 상태의 간극과 한계로 인해, 오히려 데이터상의 입체처럼 보이는 그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좌표 값이 설정한 추상 공간에서 발현한 입체적 시각의 작용이다. 이병호가 “좌표에 닿는 시각”이라 부르는 시각적 상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이미지는 좌표 망에 의해 당겨지고 밀리며, 입체와 함께 변형되는 물질처럼 작동한다.따라서 좌표 값을 가진 데이터 입체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다.그것은 조각적 이미지다.왜냐하면 그 이미지가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좌표와 볼륨, 형태의 지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이미지는 표면 위에서 납작하게 붙는 것이 아니라,입체의 구조를 따라가며 새로운 질량감을 획득한다.“Silhouette Coordinates”는 이처럼 데이터와 좌표, 색과 형태가서로를 비추고 구부리며 만들어내는 조각적 상황을 지칭한다.


이처럼 <Silhouette Coordinates> 시리즈는 조각이 전개되는 또 하나의 환경의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이병호는 본래 입체의 좌표를 평면의 UV 좌표로 펼친 후 색을 칠하여 입체의 좌표 값에 색채가 들어맞도록 하는 보편적인 그래픽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XYZ의 입체 공간의 좌표 위에 그대로 색을 안착시킬 때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왜곡(stretching and distortion)을 사용한다. 좌표 위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조각은 입체상을 덮는 2차원의 평면 좌표로 색을 입히지 않으면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오류는 “조각적 상황”이 드러나는 주요한 공간의 지표로 환원된다. 현실 공간의 조각 또한 표면에 색을 칠해도 덩어리의 요철과 명암 대비를 통해 끊임없이 왜곡과 착시를 불러일으키듯, 데이터상의 입체에서 발생하는 채색의 오류 역시 “조각적 상황”을 드러내는 미적 암시가 된다.


따라서 입체를 인식하고 드러내는 개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현실과 가상이라는 감각적 순환을 일으키면서, 이 두 공간을 모두 조각이 품은 “환상의 빛”으로 수렴한다. 이병호의 작업은 인체 조각이라는 기원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로댕적 전환을 거쳐, 조각의 성질에 기반한 데이터상의 공간까지 확장된다. 이는 모두 각각의 일관된 계획을 통해 진행된 경로이며, 그것을 펼치면 하나의 명료한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의 지도는 조각을 끝없이 진화하는 진행형의 시제로 만들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 점에서 《환상의 빛》에는 이전 경로의 완결과 새로운 경로의 출발이 교차한다. 조각이 어디까지 증식하고 성장할 수 있는가는 그가 조각을 규정 불가능한 유기적 존재로 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조각은 끊임없이 확장하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1] 이에 관해서는 Rosalind Krauss,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 Postmodernist Repetition,”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 MIT Press, 1986; and “Narrative Time: The Question of the Gates of Hell,” Passage in Modern Sculpture, Viking Press, 1977 참조.

[2] 로댕은 ‘아바티’라는 용어를 점토로 만든 “신체 부위들”—팔, 머리, 다리, 손, 발―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그는 이러한 다양한 크기의 형태들을 미리 만들어 석고로 주조해두고, 그것들을 상상력에 따라 조합하여 자신의 단편적인 인체 조각을 완성하거나 새로운 군상과 구성물을 만들어냈다(https://www.musee-rodin.fr/en/musee/collections/oeuvres/abat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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