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아름답다. Never to be one. Yet beautiful.
March 21 - April 19, 2025
김아름 Areum Kim · 이연정 Lee Yeon Jung · 장도은 Jang Doen
전장연 Jangyeun Jun · 조완준 Alex Cho · 하선우 ha-sunwooh
“가끔은 나도 어떤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 사진을 모으고, 때로는 글도 쓰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는 걸 알고 있고, 내가 그걸 안다는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만일 내가 어떤 순간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매우 정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가 나의 사랑이 떠나는 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1]
한 구석에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이 새겨진다. 그와는 영 동떨어진 곳에 ‘우리는 아름답다.’라고도 새겨진다. 서로를 연결 짓기에는 사이가 제법 멀지만, 그렇다고 말의 양 끄트머리가 아주 시야를 벗어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자가, ‘영원히 하나’가 될, ‘아름다운’ 모습일 ‘우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을 상상한다. 가만히 거리를 두고 놓여 있었을 뿐인, 발도 없고 손도 없는, 영원히 만나지 않았을 말들이 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금세 달라붙어 버리는 순간을 말이다.
우리 외부에 존재하던 하나의 명료한 현재는 각자의 독립된 기억 속으로 들어오며 수만 갈래로 분화한다. 서로의 기억을 맞대어 보면, 이미 어딘가 느슨해지고 어딘가 매어진 그물들은 도무지 맞춰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현실이 우리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재편성될 때, 개인의 세계는 탄생한다. 그러니까 세계라는 것은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존재해 온 거대하고 허름한 문명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마음 안에서 계속해서 터지듯이 뿜어져 나오는 찰나의 반짝임들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의 분출과 폭발은 생성되기 무섭게 뒤로 후퇴하며, 우리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진행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여기, 그들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과 함께 아직 오지 않은 세계로 나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굉음과 함께 잔해가 된 엔진과 페어링을 남기고 빠르게 멀어지는 모습이 마치 우주발사체를 닮은 듯하다.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전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아름답다.»를 통해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예술적 여정을 따라 늘어선 꼬리와 파편에 새겨진 진동을 가만히 느껴보려 한다.
1
작게 피어나 먼 곳으로 향기를 드리우는 난초의 선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들은 젖은 붓끝으로 고운 선의 묵란(墨蘭)을 반복해 그리며 자신의 이상에 다다르려 했다. 전장연은 멀어져 가는 이 군자화의 잔상을 붙잡아 오늘날의 중력 세계로 끌어들인다. 뜨거운 열에 달구어지고 무자비한 두들김에 휘어져 형상을 갖춘 검은 판들이 공간을 지르며 ‹어제와 오늘›(2024)을 완성한다. 작가는 한 인간의 삶에 주어진 수없이 많은 이름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무거운 난을 치고, 손아귀에 쥔 작은 열매 몇 알을 그 위에 두어 위태로운 흔들림을 잠재우려 한다.
하선우의 정물 풍경은 아주 미시적인 세계를 닮았다. 작가는 정물을 무대 위로 올린다. 이들에 조금은 곤란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 반응을 관찰하는 식으로 시공간-세계의 물리적인 성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대화 펼치기›(2024)에서 사물들, 유리컵에 담긴 물이나, 반쯤 드리운 장막 뒤로 놓인 성냥불은 본래의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소신에 맞는 새 길을 내어 움직이고, 서술하고, 교류한다. 생경한 작용들로 가득한 장면은 언뜻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이해를 묻는 듯 보이지만, 그보다는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 체계를 되돌아보도록 유도하는 것에 가깝다. ‘정적인 언어’로 정리된 물리 세계를 ‘동적’으로 풀어헤침으로써 그에 반응하는 스스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2
장도은은 수백 년, 수천 년을 견고히 버텨 오며 이제는 인간이기를 초월한 듯 보이는 존재의 몸을 자신의 손으로 깎고 빚어낸다. 보살을 닮은 ‹입상›(2024)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머리와 나무로 이루어진 몸통을 지닌다. 자비를 내리는 오른손과 대지를 향하는 왼손은 자성에 의지해 본체에 매여 있다. 작가는 또한 금속 단조에 사용되어 조각의 기반이 되는 모루를 나무, 흙, 돌을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조각의 범주 내에서 여러 세대를 지나 계승되어 온 기호들을 불러와 그 의미를 걷어낸 뒤, 이를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 여러 가지 물질과 몸짓을 더하며 자신의 조각적 여정에 관한 독백을 풀어낸다.
조완준의 회화에 등장하는 형상들은 마치 손에 쥔 모래알처럼 모호하게 떠올랐다 이내 흩어진다. 흐르는 입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파헤치려 다가가면 의미를 담기에는 다소 가벼운 무게를 지닌 대상들이 시야를 무심히 지나가 버리고, 그 자리에 ‘비어 있음’을 뜻하는 녹색과 길쭉한 붓질만 남는다. 작가는 이처럼 화면 위에서 포착되는 대상들의 무게를 덜어내 그 자리에 시각적 직관이 채워지도록 한다. 나아가 그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표면을 해체하는 시도를 행한다. ‹Landscape 5›(2025)는 4개의 페인팅 모듈로 이루어진 지지체 위에 그려진 회화 작품으로, 작가는 완전한 영점에서부터 물질을 쌓아 올려 풍경을 완성했다.
3
오래된 가구의 철 지난 장식, 칠이 벗겨진 외벽, 녹슨 철문, 찰과상으로 상처 입은 피부. 이연정은 이미 낡아버려 본 모습을 반쯤 지운 채로 존재하는, 하지만 아직 스러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의 희미한 초상을 수집한다. 향수에 그치지 않고, 대상의 표면에 성긴 기록으로 새겨진 촉각적 경험을 되살리기 위해 작가는 여러 재료를 표면에 얹기도 하고, 이를 다시 긁거나 갈아내기도 하면서 자신의 것이 아닌 긴 세월을 압축적으로 되짚는다. 이렇게 그는 무언가의 과거를 가져가고, 대신 그 삶에 헌사를 보내듯이 과거의 주인이었던 낡은 목숨을 ‹Breathing hole›(2023)과 같은 육중한 기념비로 환생시켰다.
한동안 김아름의 마음에 가득 차 있던 물은 이제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래도 흘러가는 타국의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듯, 물을 닮은 이미지를 종이에 새기고 물들이며 ‹사랑의 물방울들›(2023)을 그려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 그리고 영원함을 떠올려 왔다. 물은 때로 너무나도 선명히 떠오르지만, 손을 넣어 그것을 길어내려 하면 이내 일그러져 버린다. 한편, 작가는 ‹물이 된다›(2023)에서 물길을 좇아간 끝에 투명한 물이 되고 마는 이들을 보여준다. 물과 사람의 마음 모두 자꾸만 어디론가 멀어지듯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우리가 되찾아간 곳에서는 영 떠나지 않고 푸르게 흐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보다는 끝 모를 움직임으로 잦아들지 않는 존재들로부터 더 짙은 영원성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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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희주, 『환상통』(문학동네, 2016), p.26.
최수지(큐레이터, 스페이스 소)